티스토리 뷰

드라마 속 부동산이야기

'응답하라 1988’로 보는 제1기 신도시의 출현 : 일산과 분당


성경의 창세기편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 거주하며 처음에는 배고픔도 부끄러움도 모르고 살았다. 그저 행복하게.

이브가 간악한 뱀의 유혹에 선악과를 먹으면서 선과 악을 알게 되고 배고픔과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무화과 잎으로 중요부위를 가리게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때부터 우리 인류의 의∙식∙주가 태동되었던 것일까?

태고부터 그 절대적 필요성이 인식되어온 의∙식∙주. 그 중에서도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아마도 ‘주’가 아닐까? 요즘 사회분위기는 ‘의’와 ‘식’, 이 두 가지 부분만을 놓고 본다면 그다지 그 필요성이 각인되지 않고 있는 듯하다.

씹는 행복은 배제한 채 간헐적 단식과 필수 영양소만을 섭취하는 다이어트 열풍이나 맛 집을 탐방하는 식문화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만 하는 ‘식’의 개념이 상실 된지 오래이며, 핏을 중요시 하는 요즘 의류들이나 비키니와 누드비치 등 주요부위만을 가리는 패션을 볼 때‘주’의 개념 역시 필요충분조건에서 탈락한지 오래되었음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렇게‘식’과 ‘의’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그다지 필요가 없는 것으로 혹은 그 가치가 반감된 시대가 도래하였으나 여전히 그 중요성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 있다.

‘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필요로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그 목적이 투자가 되었던 투기가 되었던, 실거주가 목적이던 갭투자가 목적이던 여전히 주거에 대한 사회적 목마름은 여전한 실정이다.

 

#일산 #분당 #신도시의_출현

 

 

Scene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덕선이네 집. 저녁 식사중인 덕선이네 식구들이 밥상머리에 빙 둘러 앉아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마침 뉴스에서는 분당과 일산에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자막과 함께 앵커의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진출처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중 화면캡쳐

 

-정부는 최근 폭등하고 있는 서울의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고 주택공급을 크게 확대하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 일대에 540만평 규모, 고양군 일산읍 일대에 460만평 규모의 주택도시 2곳에 총 18만 가구의 아파트 및 단독주택을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사진출처 : 드라마 ‘응답하라 1988’중 화면캡쳐

 

“와 아파트를 저래 많이 짓는데 왜 우리 살집이 없노...”

 

(이때 노을이가 처진 눈으로 애처롭게 아빠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빠, 우리 언제 이사가? 나도 아파트 살고 싶은데. 내 친구들도 이제 반 이상은 아파트 살아.”

“알았어. 조금만 기달려라. 아부지 열심히 돈벌고 있자네~ 미안허다. 허허.”

 

(밥을 먹다 짐짓 의욕에 찬 목소리로 덕선이가 말한다.)

 

“아빠, 괜찮아.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좋은 집 사줄게. 나만 믿어. 내가 사줄게.”

 

 

Explanation

 

우리나라의 제1기 신도시는 일산, 분당, 평촌, 산본, 중동 이렇게 5개 도시에 이른다. 수도권의 주택가격안정과 주택보급율을 높이고자 정부는 기존 시가지의 일부인 평촌, 산본, 중동 3곳에 외형을 확장하여 신도시를 건설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쉽게 잡히지 않는 주택가격과 경기 남부권역에만 신도시를 만들어 경기 북부권역 주민들이 차별을 받는다는 성난 민심에 일산과 분당이라는 새 판을 짜기에 이르렀다. 결국 일산과 분당신도시는 제1기 신도시의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이런 신도시에도 강식당이 있을까.

 

본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신도시는 바로 일산과 분당이다. 정부 주도하에 건설된 제1기 신도시 중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일산과 분당. 당시 급증하는 서울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서울생활권을 염두 하여 수도권 택지에 베드타운을 건설한 것으로 현재는 자급자족기능까지 더해져 서울만큼이나 비싼 도시가 되어 버렸다.

 

1980년대 중반, 1986년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개최로 인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일대에서 부동산 가격이 미친 듯 뛰었다. 마치 널뛰기를 하듯 연일 고공행진이었다. 폭등하는 집값에 전문 투기세력인 ‘복부인’까지 가세하자 정부는 긴급한 대책마련에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통계청 등 정부의 공식적인 자료에 의하면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년간 주택과 토지는 매년 약20~40%씩 상승했다. 이는 지금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실로 대단한 폭등세였다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조성된 저유가, 저환율, 저금리의 3저 현상 그리고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으로 인한 경기 호재로 많은 사람들이 주택을 사려고 했고 돈이 있는 일부 재력가들이나 기업들까지도 너나 할 것 없이 주택을 지을 수 있는 토지의 매입을 서둘렀다. 주택의 개념이 거주에서 투자로, 투자에서 투기로 바뀌는 시절이었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은 불안의 연속이었고 그 불안은 전혀 해소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주택가격 때문에 서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정부는 수도권 일대인 평촌과 중동, 산본에 신도시 계획을 발표했다.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런 조치로도 주택가격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결국 당시 정부는 1989년 4월, 서울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하나씩 대규모 신도시를 추가로 조성한다는 획기적인 주택공급 확대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제1기 신도시인 일산과 분당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 일산신도시 전경

 

- 일산신도시

 

일산은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와 일산서구에 있는 계획도시로 1990년 3월 ‘예술과 문화시설이 완비된 전원도시’, ‘자급자족의 기능을 갖춘 수도권 서부의 중심도시’, ‘남북통일의 전진기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건설을 시작하여 1992년 12월에 준공되었다.

‘일산’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로 전해진다. 먼저 구한말 경의선 개설 시기인 1904년에서 1905년에 이 지역을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묶으면서 인근에 있던 ‘한뫼 마을’의 이름을 따 일산이라 칭했다는 설이 있으며, 다른 한 가지 유래는 현재 일산에 있는 고봉산에서 비롯된다. 고봉산을 순 우리말로 바꾸면 ‘한산’이 되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해서 ‘일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일산은 신도시로 지정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던 곳이었다. 지리적으로 북한과 가깝고 군사시설이 많았기도 했지만 일산의 땅 대부분이 절대농지였다.

필자도 당시 소문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북에서 남쪽으로 침공할 때를 대비해서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다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만큼 당시로서는 일산이라는 경기도 변두리 농촌지역에 도시를 건설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화젯거리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일산신도시는 2017년 11월 30일 현재, 일산동구와 일산서구를 합친 총 102㎢의 면적에 고양시 인구의 절반이 넘는 221,191세대, 586,224명이 거주하고 있다.

 

▲ 분당신도시 전경

 

- 분당신도시

 

분당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계획도시로 1989년 수도권의 중심업무지구로 기능하는 자족적인 신도시’, ‘쾌적한 교외 주거지’를 목표로 건설을 시작하여 1991년 9월에 준공되었다.

‘분당’이라는 명칭은 일제가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당시 이곳에 있던 분점리와 당우리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분당은 제1기 신도시 조성 당시 일산보다 규모가 더 크게 계획, 조성 되었으나 세월이 지날수록 일산의 규모가 더 커져서 지금은 일산보다 그 규모가 약간 작다. 2017년 11월 30일 현재 69㎢의 면적에 187,887세대, 503,830명이 거주하고 있다.

 

분당의 경우 일산과 마찬가지로 신도시로 개발되기 전에는 70%가 농경지, 23%가 임야였다. 그러나 일산과는 달리 분당에는 중산층을 위한 고급 주상복합부터 서민을 위한 각종 임대아파트까지 다양한 종류의 아파트는 물론 서울의 강남권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에 오피스텔과 백화점 등 상업시설들도 건설됐었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일산보다 선호도가 높았음은 물론 일부 자급자족이 가능한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제1기 신도시의 건설로 주택가격은 상당한 안정세를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새판으로 텅 빈 대지위에 새롭게 도시건설을 시작하여 만든 신도시인 일산과 분당신도시의 조성으로 1990년 중반이후 주택가격은 가파른 안정기에 돌입할 수 있었다.

다만 제1기 신도시 중 평촌과 산본, 중동을 제외한 일산과 분당은 기반시설이 건설되기 전에 아파트 입주가 시작돼 초기 입주민들은 많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또 주택 위주로 도시를 조성해 베드타운의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었다. 일산과 분당신도시의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정부가 사업을 급하게 추진한 결과 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된 지 7개월 만에 시범단지가 분양이 됐고, 2년만인 1991년엔 첫 입주가 시작되었으니 자급자족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에 대한 보상 문제나 이주민들의 불편야기 등 잡음도 적지 않았다.

 

일산과 분당신도시의 아파트들도 벌써 준공 30년을 앞두고 있다. 많이 낡아 보수가 불가피한 단지들도 많고 일부 아파트의 경우에는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제2기 신도시, 제3의 신도시가 출현하고 있는 지금 제1기 신도시의 대표격인 일산과 분당이 단순히 주택의 재건축이나 아파트의 리모델링을 넘어서는 도시계획 자체의 틀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 자급자족이 가능한 진정한 신도시로서의 기능이 제대로 수행되어 베드타운의 한계를 넘게 될 것이니 말이다.


강식당도 신도시에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