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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기사로 보는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재생사업

 

최근 몇 년 전부터 상권에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가로수길을 필두로 경리단길, 경의선숲길, 망리단길 등 지금도 그 바람은 도심지 골목 곳곳에서 여전히 나부끼고 있다. 그 바람은 바로 ‘골목상권활성화’바람이다.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역세권이나 대학상권 등 진입장벽이 높은 곳 보다는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저렴하고 개성 있는 공간을 연출해 낼 수 있는 골목에 젊은 창업가나 소상공인이 찾아들면서, 운치와 낭만이라는 추억을 더듬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유행이 SNS와 맞물려 잔잔한 바람을 넘어 강풍까지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행과도 같은 바람은 뜻하지 않게 엉뚱한 곳에서 피해가 일곤 한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골목상권이 활성화 되면 될수록 그 활성화 주인공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되곤 한다.

 

#젠트리피케이션 #골목상권 #도시재생사업

 

드라마 흑기사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순정적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지만 사실 멜로의 배후에는 도시재생이라는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진취적 미래를 건설하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극 중 주인공 문수호(김래원 분)는 자수성가한 부동산재벌이자 도시재생이라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도시계획전문가이다. 도시계획가 혹은 도시계획자는 죽어가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종의 도시설계자들로 재건축이나 집단적 재개발이 아닌 동네마다의 모습을 나름의 의미와 특색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도시구원의 흑기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순정적 사랑이야기와 함께 도시재생 그리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불합리적 피해의 회복을 그려간다.

 

Scene

 

젊은 사업가 수호는 도시재생 프로젝트 참여자들 및 정부의 도시담당 공무원과 함께 낡은 한옥들이 밀집해 있는 동네를 찾아가 이 상태대로의 아름다움을 지키자고 설명한다.

▲ 드라마 ‘흑기사’중 구 도심지 임장활동 장면, 일부 편집

 

(자신감에 차 있는 수호는 일행들에 앞서 걸으며 적극적으로 일행들에게 말한다.)

 

“시간이 멈춘 곳이 여기 있습니다. 이 좁은 한옥동네는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집주인들은 최소한의 보수만 하며 집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년 후 재개발은 무산됐죠.”

 

(사업설명회를 겸한 공청회장으로 장면이 바뀌며 다시 등장하는 수호)

 

마을 주민들과 투자자들 그리고 정부관계자들은 물론 언론사 기자들까지 참여한 자리에서 수호는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의 가치에 무게를 두자며 전통적 미를 살리는 도시재생을 시행하자고 역설하고 있다.

 

“주민들의 실망은 컸지만 오히려 기회가 되었죠. 이 골목에 생경하게 문을 연 작은 카페를 시작으로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고 서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앞으로 낙후된 동네 되살리기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소상공인과 젊은 창업자 그리고 예술가들의 공방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을 펴고자 합니다. 5년 동안 월세를 올리지 않고 내 쫓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planation

 

이 장면에서 중요한 키워드 두 개가 등장한다. 하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이고 또 다른 하나는 도시재생이다.

최근 젊은 층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거나 성장한 골목상권이라면 여지없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불거져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저평가되어있어 임대료가 낮았던 지역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인기를 얻게 되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라는 속담이 딱 들어맞듯 주인들은 임대료를 대폭 인상한다. 그러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다. 견디거나 나가거나 말이다.

그럼 젠트리피케이션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층이나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 사용하였다. 루스 글래스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들이 유입됨으로 인하여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하층민계급 주민들은 치솟은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화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현대적 의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도시의 교외화 현상과 관련이 있다.

도시의 발전에 따라 대도시일수록 중심 시가지에서 도시 주변으로 거주 인구가 확산하는 교외화 과정이 진행되고, 이 과정에서 교외 지역은 자본이 집중 투여되면서 발전하는 반면, 도심에 가까운 지역은 교외로 이주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낙후지역으로 전락한다. 이런 문제가 수반됨에 따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낙후된 지역을 활성화하기 위하여 재개발을 주도하는 경우도 있고, 저렴해진 땅값에 주목한 부동산개발업자들이 지주와 결합하여 개발하는 경우도 있으며, 값싼 작업공간을 찾아 낙후지역에 모여든 예술가들이 다양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활성화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여러 요인에 의한 도심 활성화의 결과로 해당 지역은 주거 환경이 향상되고 부동산 가격 등 전반적인 자산 가치는 상승하지만, 그에 따른 주거비용도 높아져서 원래의 저소득층 주민들은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거주지에서 밀려나게 된다.

최근 드라마나 예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네는 홍대 앞에 위치한 연남동 경의선숲길일 것이다. 경의선숲길이 개통되기 전 연남동은 말 그대로 연희동 남쪽동네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경의선숲길이 개통되고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개성 있는 새로운 골목상권이 형성되었다.

상권이 활성화되자 지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지가가 오르면서 자연스레 임대료도 급등했다. 결국 경의선숲길이 개통된 지 3년여 만에 임대료는 대략적으로 3배 이상 급등하였고 그로 인해 원래 영업하고 있던 영세 상인들이 하나 둘씩 연남동을 떠나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는 대기업 프랜차이즈들로 들어서면서 말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연남동 경의선숲길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의선숲길 이전에 강남에 있는 가로수길이 그랬고 얼마 전 경리단길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로 큰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렇다면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은 사회적 문제점을 해결할 방안은 없는 것일까?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과 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하여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 환경적으로 활성화시키는 것을 도시재생이라고 말한다.

도시재생은 도시커뮤니티 유지 및 활성화 과정적 활동으로써 이해관계자간의 합의형성 등 의사결정시스템을 중시하며, 기존 거주자의 지속적인 생활여건 확보의 물리적인 측면, 사회·문화적 기능회복의 사회적 측면, 도시경제 회복의 경제적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방식의 정비 개념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도시재생이 실천적인 사업과 연계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커뮤니티 운동과 중심시가지 활성화 사업이 연계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마을만들기 운동차원의 사업이 연계되어 있으며, 영국에서는 근린지역 재생운동과 연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몇 해 전부터 일부 지자체 단위로 마을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중앙정부차원의 도시재생과는 거리가 있다. 도시재생 중 하나인 뉴타운재개발사업, 뉴타운 열풍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것이 불과 채 10년이 지나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2013년 2월 뉴타운 정책을 입안하고 뉴타운과 관련해서 어느 정치인은 영남에서 서울의 동작으로 지역구까지 변경해 총선에 출마할 정도였다. 일부 이익을 앞세웠던 사람들은 ‘잿밥보다 염불’이라고 용적률을 높게 부여받아 아파트를 지어 이익을 남기려 주민들을 이간질시키기에 바빴고 그러함으로 결국 주민들의 갈등의 골만 깊게 패이게 되었다.

뉴타운 정책은 첫 출발부터 문제가 있었다. 2010년 당시 기준으로 아파트 거주 가구비율은 47.1%로 단독주택 거주 가구비율 39.6%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거 공간 획일화에 대한 비판이 높을 때였다.

지금은 어떠한가?

당시 뉴타운으로 지정됐던 지역들 중 일부 지역은 주민들의 불협화음으로 개발이 지연되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연출되면서 슬럼화 현상마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 뉴타운 해제지역, 도시재생사업 선정

 

결국 뉴타운이라는 것은 도시재생이라는 긍정적 측면에서 시작하였으나 이익만을 추구한 부정적인 결과물로 전락해 버린 것이 아닐지 모를 일이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도시재생사업이다. 문재인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기존의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과는 달리 차별화된 방식으로 죽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강릉을 포함한 총 68곳이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실현가능성일 것이다. 뉴타운 지역으로 묶여 있어 슬럼화 된 지역이나 낡은 골목길에 노후 주택들이 밀집해 있는 재개발 예정단지의 주민들은 대부분 집을 새로 지을 돈이 없어 동네를 떠나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런 실정에 정부의 자금을 투입해 도시재생을 하려면 굉장한 자금은 물론이고 주민들도 이런 부담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담을 줄이고 사업비 충당을 위해 다세대주택이나 도시형생활주택 등을 위주로 짓는다면 이 또한 도시재생의 의미는 퇴색되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도시재생은 경제논리보다는 사회적 관점과 전통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고 곳곳에 색깔이 있는 마을을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재생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 것이다.

특색 있는 작은 점포들이 활력을 찾고 영업이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의 유입이 자연스럽게 늘고 그 사람들이 마을에 거소지를 두면서 마을에 활기를 유지하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완성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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